물크러진 시간은 잼으로 만들면 된다
약한 불에서 오래오래 기억을 졸이면 얼마든 달콤해질 수 있다
/ 슈톨렌, 안희은
알고 있니. 시간은 선이 아니라 점으로 기억된대. 그렇다면 꽤 큰 방점이 찍힌 셈이다. 이젠 두어 달 외출이 아니라 제대로 된 출가라는 거. 하지만 퍽 이상하다. 발 묶여 산 기억이 자꾸 뒤를 보게 해.
긴 여행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돌아가지 않는데도 혼나지 않는다.



































5月 1
일이 많았다. 응달과 볕을 쏘다니면서. 몇 계절이 지나는 동안 바라던 바가 이뤄지기도 숨죽인 모양새로 스러지기도 하면서.
어떤 바람은 손에 쥐고서야 그 이름표를 확인하게 된다. 정말로 이게 맞나, 싶은 것처럼.

공휴일인 덕에 좋아하는 영화를 밤늦게 켰다. 객관적으로 아쉬운 부분은 몇 있지만, 오고 가는 대사나 눈빛만으로도 충분히(적어도 나에게는) 흐린 눈이 가능해진다. 산뜻한 기분으로 잠들기는 글렀으니 비하인드 영상이나 수어 차례 돌려 보다 곯아떨어졌다.
느지막이 일어나 점심 겸 저녁을 챙긴다. 원고를 본다. 화분에 물을 갈고 시든 꽃을 솎는다. 창문을 연다. 하루가 다 지나도록 울지 않는다.
5月 4
연휴를 틈타 안부 차 올라온 엄마. 어디부터 데려갈까 고심하다 고른 곳은 덕수궁이었다. 청계천과 광화문 주변에다 국립현대미술관도 끼고 있으니 퍽 볼 게 많았다. 미술관은 마침 자수 전시를 했다.













실컷 구경한 다음에는 광화문 앞 거리로 나섰다. 너무 뜬금없이 라이언이 저러고 있길래 당황. 귀여운 데 상당히 컸다.
남은 시간에는 한강 앞에 앉아 두런두런 대화가 오갔다. 주식이나 부업, 결혼과 같은 주제들. 아직은 멀게만 느껴지는 이야기다 영.
5月 5
하필 어린이날, 비오는 날에 당첨된 현대 백화점. 어버이날 겸 취업 첫 선물 겸 잠옷 한 벌씩 사드리고 내 향수도 샀다. 고른 건 몇 년째 고민했던 바이레도 라튤립. 그런 뒤에는 식탁 위에 얹을 식탁보와 과일, 견과류도 챙겼다.
점심과 디저트는 넉넉잡아 30분씩 기본으로 기다렸다. 뭐 좀 먹을 때마다 줄을 서야 겨우 먹을 수 있는 건 여전히 적응이 안 돼. 애진작에 진이 빠져서 돌아오는 길은 망설임 없이 택시를 탔다.
5月 7
괜찮다가 지쳤다가, 또 좋았다가 아팠다 하는 일상의 반복.
5月 10
어쩌다 보니 주말마다 손님이 오네. 예의 첫 방문이다. 금요일과 토요일은 우리 집에서, 일요일은 호텔에서 묵는 일정. 15년 째 안 사이다 보니 못본 지 1년은 별로 어색하지도 않다.

이미 서울에서 혼자 놀던 예를 퇴근하고 만났다. 도서관 앞에 앉아 일상을 나누기도 잠시, 미리 알아뒀다는 한식집으로 곧장 향했다. 나이가 들수록 입맛도 바뀌나 보다. 우리끼리 순두부찌개 먹으러 가는 거 너무 어색해. 그러게. 그런 시답잖은 이야기를 웃으며 했다.
5月 11
꽤 늦은 새벽까지 떠들다 잠들곤 눈 뜨자마자 부랴부랴 오픈런. 규카츠를 원래도 좋아하긴 했는데, 여기는 진짜 입에서 살살 녹아. 실수로 한 조각 떨어뜨린 게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다.
저녁으로 예약해 둔 오마카세까지는 여유가 남아 있어 다시 귀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켜둔 채 누워서 실컷 쉬었다. 나가야 할 쯤부터는 귀신같이 비가 내리길래 지갑도 빼먹은 겸 택시를 탔고.




5月 16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되는 건 별 도리가 없다. 그만큼 정이 든 것도 어쩔 수가 없고. 이해하면서도 서러운 건 내가 아직 애라 그런가. 이럴 때마다 전사람이 보여준 그 배려가 새삼스레 와 닿는다.





포기한다는 건 얼마나 큰 마음일까. 난 여전히 제일 어려운 게 놓는 일인데.
5月 17
발 닿는 대로 가본 망원 한강공원. 여의나루보다 내 취향일 줄 몰랐다. 바로 옆자리에 하모니카 연주해 주시던 분이 있어 그것도 마냥 설렜고.


5月 24
오후 4시부터 시작한 회식 덕에 하루가 길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다 좋은 건 큰 복이란 걸 매번 느낀다. 술과 웃음의 여운으로 자꾸 아쉬워져 집 앞 강가에 자리를 잡았다. 날씨와 공기, 기분과 풍경 모두 어디다 꽁꽁 넣어두고 간직하고 싶을 만큼 만족스러운 하루.